내가 임영웅의 노래를 처음 들은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내일은 미스터트롯》 예선전에서였다.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라며 노사연의 <바램>을 불러서 심사위원 전원의 하트를 받았다. 악을 쓰지도 않고, 우는 소리를 내지도 않고, 음과 음이 이음새 없이 부드럽게 이어지다 무리 없이 고음으로 쭉 끌어올리는 발성이 나를 사로잡았다.
"이게 진짜 노래지” 하는 생각은 그때부터 했지만 그때는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노래를 불렀고, 현역부, 신동부, 유소년부 등에서 깜짝 놀랄 실력을 갖춘 사람들이 많아 임영웅의 우승을 확신하지 못했다. 회를 거듭하면서 점차 임영웅에 집중해서 보게 된 것은 그의 흔들림 없는 노래 실력 때문이었다.
당시 참가자들에게 여러 조언을 해주던 주현미의 말처럼 자기 목소리에 맞는 곡을 선택할 줄 아는 것도 실력이다. 때로 자신의 목소리에 맞지 않는 노래를 들고 나와 실망스러운 무대를 보여준 참가자도 있었고, 아차 하는 순간 실수를 하는 참가자도 있었다. 1년 365일 언제든 달려 나가 노래를 부를 준비를 해야 하는 프로 가수가 일관되게 경이로운 노래를 들려줄 수 있다는 것은 중요한 것이다.
임영웅은 피 말리는 에이스대첩 포함 9번의 무대에서 자신의 목소리에 맞는 노래를 골라 늘 감동적인 무대를 만들었다. ‘이제 뭔가 새로운 것이 더 있을까’ 하며 그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질 때마다 그는 그 기대를 깨부쉈다.
임영웅의 휘파람은 신의 한 수
그가 휘파람을 섞어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를 불렀을 때 노래가 끝나고도 짧은 순간 경연장이 적막에 싸여 있었다. 대학에서 음악 공부를 할 때 나의 비올라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네가 너 자신에 도취해서 감정을 쏟아내면 관객들이 뒤로 물러나지만, 한 발자국 너의 내면으로 들어가면 관객들이 네 안으로 한 발자국 따라 들어와. 그때 한 번 감정을 터트려주면 관객이 너의 감정 속으로 완전히 빠져들지.”
안으로 침잠하는 임영웅의 노래에 경연장 전체가 한 발자국 다가섰다. 만 서른이 되지 않은 미혼(未婚)의 이 가수는 의식 없이 병상에 누워 있는 아내의 조글조글한 손을 잡고 슬픔에 잠긴 60대 남편이 되어 혼잣말로 지난날의 기억을 노래한다. 넥타이를 매어주던 곱고 희던 손, 막내아들 대학 시험, 큰딸 결혼식. 모든 관객이 촉각을 세우고 이 60대 부부의 과거로 여행길에 올랐다. 관객들의 뺨으로 흐르는 눈물의 소리가 들릴 것처럼 객석이 조용했다.
난 이 노래를 좋아하지 않았다. 가사가 너무 길고 지루해서이다. 원래 이 노래에는 ‘세월이 흘러감에 흰머리가 늘어가네. 모두 다 떠난다고 여보 내 손을 꼭 잡았소’라는 구절이 있었다. 임영웅이 이 구절을 떼어내고 그 대신 휘파람을 집어넣은 것은 신의 한 수였다. 너무 설명적이었던 노래가 간결해지면서 감정의 농도는 진해졌다.
휘파람을 실은 간주가 끝나면서 조근조근 아내에게 이야기하던 남편은 오열하기 시작한다. “그 세월이 다 어디 갔소? 왜 당신은 아무 말이 없소? 왜 날 두고 가려 하오?” 관객들은 사방이 막힌 절망감에 발버둥 치는 남편의 감정 속으로 휘말려 들어갔다. 드디어 남편은 모든 것을 포기한다. “그래, 잘 가시오. 편히 가시오.” 관객들은 빨려 들어간 그 감정 속에 고요히 잠기고 노래가 끝난 후에 박수치는 것도 잊은 채 머물고 있었다.
대학 시절 연주를 마치고 눈을 뜨기 싫었던 적이 있다. 그 세상에서 깨어 나오고 싶지 않았다. 눈을 뜨면 내 앞에서 내 연주를 채점하고 있는 교수님들 얼굴과 주변의 모습이 모두 낯설었다. 임영웅의 노래가 끝났을 때도 영원히 박수 소리가 나오지 않았으면 했다. 깨어나지 않고 그 속에 계속 머물러 있고 싶었다.
임영웅이 이 노래를 불렀을 때 미국은 나라 전체가 셧다운 상태였다. 직장도 문을 닫고, 운동하는 곳도 모두 문을 닫고 이발소도 문을 닫았다. 뉴욕주는 코로나가 너무 심해 법원이 계류 중인 모든 사건의 공소시효를 일괄적으로 석 달 연장하고 문을 닫았다. 이발소에 가지 못해 머리를 길게 기른 사람들이 평일 오전 10시에 밖에 나와 뛰거나 산책을 했다.
나 역시 집에서 하루 종일 《내일은 미스터트롯》 보며 와인만 마시다 눈 깜짝할 사이에 불어난 체중 때문에 매일 나가 음악을 들으며 뛰었다. 한창 열심히 뛸 때 갑자기 나오는 임영웅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때문에 울컥하며 뜀박질을 멈춘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 노래를 처음 듣고 그 감동을 이루 형언할 수 없었지만 한편 걱정이 되었다.
감동을 뛰어넘어 그다음
이제 임영웅은 다른 가수들보다 노래를 잘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자기와 겨루어야 한다. 이 감동을 뛰어넘어야 그가 다음 라운드, 그다음 라운드, 결승까지 갈 수 있는 것이었다. 이제부터는 임영웅의 밑천이 바닥이 나느냐 마느냐의 싸움이었다. 그의 밑천은 바닥이 없었다.
그다음 라운드인 준결승에서 그가 “보랏빛 엽-서에~~” 하고 첫 소절을 부를 때 나는 그가 우승할 것이라 확신했다. ‘엽-서에’보다 나를 더욱 놀라게 만든 것은 그 뒤에 ‘당신의 눈물인가, 이별의 마음인가 음~~~’이다. ‘음~~’은 입을 다물고 소리를 내는 허밍이다. 임영웅의 노래를 들으며 ‘허밍이 저런 울림을 가지려면 저 사람의 비강(鼻腔)은 대체 얼마나 크고 텅텅 비어 있는 것일까?’라고 생각했다.
<보랏빛 엽서>는 임영웅이 《내일은 미스터트롯》에서 부른 노래 중 나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겼다. 가깝게 지내는 분이 연말 선물로 케냐 고산지대에서 재배한 녹차를 줬다. 적도지방에서는 녹차가 보랏빛을 띤다고 한다. 그 선물을 받으며 ‘보랏빛 녹차에 실려 온 향기는~~’ 하고 나 혼자 노래를 불렀을 정도이다.
임영웅의 우승으로 《내일은 미스터트롯》이 막을 내리고 난 뒤 그의 과거 영상들을 찾아보았다. 그가 한강변인 듯한 곳에서 버스킹을 하는 영상이 있었다. 사람도 몇 명 없는 것 같은데 그렇게 열심히 노래를 할 수가 없었다. 너무 마음이 아프고 한편 드디어 세상에 이름을 알린 그가 자랑스러워 처음으로 유튜브에 댓글을 달았다.
“이렇게 힘들 때 몰라서 응원 못 해 줘 미안합니다. 수고했습니다.”
반성도 많이 했다. 그간 가요에 싫증 내고 이제 더 이상 노래 잘 하는 가수가 안 나오려나 보다 성급하게 내 멋대로 결론을 내린 것이 부끄러웠다. 앞으로 오래도록 그가 늙어가지 않고 익어가는 것을 지켜보리라 다짐했다.
기교를 뺀 임영웅판 21세기 트롯
《신청곡을 불러드립니다. 사랑의 콜센타》에서 불렀던 그의 노래는 다 훌륭했지만 그 중에서도 노래방 기계에 대고 부르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명연들이 있다. <외로운 사람들> <비상> <암연> <오래된 노래> <그리움만 쌓이네> <세월 베고 길게 누운 구름 한 조각> <잃어버린 30년> <그 겨울의 찻집> <엄마의 노래> <내 마음 별과 같이> 등 생각나는 대로 꼽아 봐도 앨범 하나 나올 만하다.
노래방 기계 말고 제대로 편곡해서 50인조쯤 되는 악단의 반주로 녹음해 독집으로 냈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본다. 거기에 이광조의 <사랑을 잃어버린 나>도 끼워주면 더욱 좋겠다.
나의 어머니가 오래전에 우리 동네에 있는 한강 옷 리폼이라는 옷 수선집으로 입던 털 코트를 가지고 가서 코트에 가죽을 대고 완전히 딴 옷으로 만들어 가지고 오신 적이 있다. 임영웅이 노래를 부르면 옷이 리폼 되어 나오듯 노래가 리폼이 된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은 누가 노래를 더 잘하고 못 하느냐의 이야기가 아니다. 임영웅은 고전이 된 노래를 자기만의 색깔로 노래해 단번에 귀에 익도록 하는 놀라운 능력을 지니고 있다.
<내 마음 별과 같이>는 유랑극단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삽입곡으로 현철이 부른 명곡이다. 현철의 목소리와 스타일로 몇십 년 동안 많은 사람들의 귀에 각인되고 사랑받아온 노래를 자기만의 목소리와 색깔로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노래를 만들어 부르는데 그게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현철의 버전은 쇠 긁는 소리 같은 걸쭉한 목소리에 현란한 트롯 기교를 섞어 구수한 경상도 억양으로 마음을 ‘마엄’ 비슷하게 발음하며 ‘부평초 같은 내 마엄을’ 하고 부르는 것이 매력이다.
임영웅은 특별히 해석을 달리 하는 것도 없고 편곡도 기존의 편곡을 그대로 사용했다. 차이라고 하면 트롯 기교를 많이 빼고 그의 풍성한 목소리를 살려 부드럽게 부른다는 것 정도인데 그게 노래를 완전히 다른 분위기로 바꾸어 놓는다. 현철의 정통 트롯 곡의 21세기적 스타일이라고나 할까.
한강 옷 리폼 집에서 찾아온 어머니의 코트는 분명 틀은 늘 봐오던 털 코트였지만 그렇다고 같은 코트는 아니다. 가죽 코트도 아니고 털 코트도 아니고 그냥 그 나름의 코트이지만 무척 보기 좋았다. 임영웅의 노래의 틀은 분명 현철이 40년 전에 부른 <내 마음 별과 같이>이지만 임영웅이 부른 노래는 그 노래도 아니고 완전히 다른 노래도 아니고 그 나름의 <내 마음 별과 같이>이었는데 듣는 순간 ‘이건 또 뭐야?’ 하며 빠져들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