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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웅 칼럼] 패스트시대, 드렁큰타이거가 증명한 음반의 가치

2018.12.04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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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렁큰타이거는 한국 힙합씬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약 20년 남짓한 국내 힙합음악의 역사에서 드렁큰타이거의 지분이 거의 동일한 것만 봐도 그렇다. ‘20주년’이란 단순히 두 자릿자 숫자가 갖는 묵직한 의미를 차치하더라도 그 이름으로 발표한 10장의 음반은 힙합씬을 호령한 결과물이자, 장르음악의 대중화를 알린 신호탄과도 같았다. 1999년 세기말에 등장한 드렁큰타이거의 첫 인상은 그야말로 술취한 호랑이였다. 그가 다시 '호랑이가 랩하던 시절'로 돌아왔다. 

힙합이란 단어가 그리 생소한 시절도 아니었지만, 당시 드렁큰타이거의 등장은 어딘가 신선하다 못해 낯설었다. 아이돌 그룹을 통해 블랙뮤직에 대한 시도가 이뤄지긴 했으나, 정통 힙합을 표방한 그의 음악은 대중에 설익은 노래였다. 지금은 흔한 단어가 된 ‘라임’을 맞추는 재미와 현란하게 오르내리는 현란한 플로우는 대중에게 분명 신선한 경험이었다. 마니아들 사이에서만 유행하던 음악을 수면 위로 올린 그의 존재는 오버그라운드와 인디씬의 교두보 역할이기도 했다.

정규 10집 ‘X : Rebirth of TigerJK’는 드렁큰타이거의 마지막 앨범이다. 타이거JK는 "요즘 힙합씬의 패러다임과 더불어 내 음악의 정체성에 따른 선택"이라며 생각을 전한 바 있다. 급변하는 씬의 분위기와는 별개인, 차트 순위와도 무관한 자신만의 음악을 들려줄 최적의 시간을 기다려왔단 얘기다. 타이거JK에게 드렁큰타이거는 그의 삶에 대한 녹록치 않은 기록이다. 앨범의 콘셉트인 ‘타임머신’을 연상시키듯 음반 전성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무려 30트랙을 가득 담아냈다. 

가요계 신곡 발표 주기가 빨라지고 음악들도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이는 급변하는 가요계의 유행에 대처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점차 달라지고 있는 음반 업계의 사정과도 무관하지 않다. 이미 정규 음반은 EP, 디지털 싱글 등 다양한 형태로 모습을 바꿨고, 미국, 일본에서만 흔히 볼 수 있었던 싱글 패턴이 주요 발매 방식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이제는 주별, 월별, 분기별로 신곡을 발표하는 모습도 가요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익숙한 광경이다.

이런 패스트뮤직 시대에서 드렁큰타이거의 행보는 앨범의 가치를 다시금 소환한다. 시대를 역행한 두 장의 CD, 예능 보다는 라디오에 집중한 프로모션, 주말이면 팬들과의 소통을 위해 전국 지방 구석구석을 찾아다닌다. 그 결과, 한터차트 1주일 이상 남자솔로 음반차트에서 1위를 줄곧 지키는 등 곳곳에 숨어있는 30대 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높이 평가 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더욱 안타까운 건 음악의 힘 만으로는 승부할 수 없는 시대인데다, 팬덤에 의존하거나 빠른 활동 패턴이 중시되는 지금에서는 힘에 부칠 수 밖에 없다. 당장 맛은 좋지만 자극적인 패스트푸드처럼, 빠르게 음원차트가 요동치고 1위곡도 수시로 바뀐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손쉽게 음악을 찾아 들을 수 있는 시대다. 누구나 스마트폰으로 쉽게 음악을 듣고 금방 다른 곡으로 바꿔 들을 수 있다.

하루 종일 앨범 재킷을 만지작거리며 CD플레이어를 돌려듣던 시절의 희열은 분명 온라인 음원사이트에서 마음에 드는 곡을 쉽게 스킵해 듣거나, 고작 ‘좋아요’를 누르는 것과는 전혀 다른 감성적 층위를 지닌다. 변화도 좋지만 음악 본질의 가치마저 사라지면 아무 의미도 없다. 좋은 음악이 우선이다. 잠깐의 실시간 1위, 검색어 1위보다 중요한 건 결국 좋은 콘텐츠다. 앨범 전체의 스토리를 정성껏 즐길 수 있는 음반의 가치를 새삼 느끼게 한, 반가운 20주년이다.

(글|박영웅 음악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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