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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식의 시크한가요] ‘K팝 기록실’을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2019.05.08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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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봐, 내 말이 맞지?” 최근 회사 단체 술자리에서 벌어진 소소한 논쟁. 보통 술자리에서 벌어지는 논쟁은 승패를 가리지 못하고 흐지부지 마무리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날의 논쟁은 매우 이례적으로 승자와 패자가 명확히 가려진 채 빠르게 마무리됐다.

‘정확한 기록’이 있었던 덕분이었다. 그날 A선배와 B선배는 농구선수 C가 특정연도에 어떤 팀 소속으로 뛰었는지 여부를 두고 다른 의견을 냈다. A선배가 구력이 상당한 농구 담당 기자임에도 불구하고, B선배는 의견을 쉽게 굽히지 않았다. 그러자 A선배는 가방에서 주섬주섬 노트북을 꺼내(알고 보니 스마트폰으로도 가능하다!) 한국농구연맹(KBL) 홈페이지에 접속하기에 이르렀다.

‘비장의 카드’였다. KBL 홈페이지에는 현역 선수들뿐만 아니라 은퇴한 선수들과 관련한 기록까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심지어 C선수의 연도별 소속팀 정보는 물론, 게임 수, 출전시간 경기당 평균득점 등 세세한 정보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정확한 기록이 있으니 승패가 확실히 갈릴 수밖에. 홈페이지에 명시된 C선수의 이력을 확인한 A선배는 승리의 미소를 지었고, B선배는 깔끔하게 패배를 인정했다.

스포츠 선수들이 아닌 가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다루는 ‘아이돌차트’ 칼럼에서 대뜸 술자리 얘기를, 그것도 농구 관련 얘기를 꺼낸 이유는 ‘기록의 중요성’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어서다. 서두에 꺼낸 일화는 MSG를 ‘1도’ 첨가하지 않은 실화다. 당시 필자는 A선배에게 상당한 부러움을 느꼈다. 술자리 토론 배틀에서 통쾌한 승리를 거둬서가 아닌 ‘기사 쓸 때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KBL뿐만 아니라 한국프로축구연맹(K리그), 한국야구위원회(KBO) 등의 프로스포츠협회들은 각 구단과 선수에 관한 데이터베이스를 정리해두는 것에 그치지 않고 홈페이지에 누구나 볼 수 있는 ‘기록실’ 코너를 마련해 놓고 있다. 이는 자연히 각 언론사 체육 담당 기자들이 기사를 작성하는 데 있어 훌륭한 원천이 된다. 기록은 그 자체로 역사이자 스토리이기 때문이다. 비단 기자들에게만 좋은 일이 아니다. 정확한 기록은 팬들에게도 해당 종목을 더 재밌게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길 수 있게 해주는 좋은 소스가 된다.

K팝 분야는 어떨까. 스포츠 분야와 비교하면 데이터베이스가 턱 없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한국음악콘텐츠산업협회가 운영하고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가 후원해 만든 가온차트(2010년 출범) 혹은 음반집계사이트 한터차트(1993년 설립)가 홈페이지를 통해 제공하는 음반 판매 및 음원 스트리밍 차트 순위나 문체부 산하기관들이 제공하는 한류나 K팝 관련 보고서 속 숫자들이 그나마 참고할만한 자료다. 

이를 통해 특정연도에 누가 차트에서 몇 위를 몇 장의 음반을 팔았으며 K팝 산업의 시장규모가 어느 정도였는지 정도야 확인할 수 있겠지만, K팝 가수들과 관련한 보다 세부적인 기록을 확인하긴 어려운 게 사실이다. 예컨대 E라는 아이돌 그룹이 데뷔 혹은 컴백한지 며칠 만에 가요 프로그램에서 트로피를 들어 올리고 연말 시상식에서 총 몇 개의 트로피를 들어 올렸는지, 특정연도에 국내외에서 몇 번의 콘서트를 열어 총 몇 명의 관객을 동원했는지 같은 기록 말이다.

그런 정보나 기록을 확인하려면 과거에 나온 기사를 일일이 뒤져보거나 나무위키나 팬 커뮤니티를 들여다봐야 하는 실정이라니,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아, 해당 기획사 홍보팀에 문의하는 게 방법도 있긴 한데 기획사에서조차 정리해놓은 자료를 가지고 있지 않을 때가 많다. 이쯤 되면 스포츠 분야와 비교했을 때 ‘주먹구구식’인 분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답답함은 분명 팬들도 느끼고 계시리라고 본다. 

물론, “K팝이 무슨 스포츠냐?”고 되묻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K팝 분야에서도 기록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져가는 중이다. K팝이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고 수많은 가수와 팀이 활동을 펼치는 가운데, 갖가지 기록들은 해당 가수와 팀의 인기를 가늠케 하는 척도로 활용되고 있기도 하다. 각 기획사가 매일 같이 ‘K팝 그룹 최단’ ‘K팝 그룹 최다’ ‘K팝 그룹 최초‘ 등의 수식어를 단 보도 자료를 뿌리는 것도 그 때문일 테다.

그런 갖가지 기록들이 스토리가 되고 역사가 되기 위해서는 보다 쳬계적이고 정확하게 데이터베이스화할 필요성이 있다는 생각이다. 누군가에게는 사소한 기록으로 여겨질지 몰라도 K팝을 사랑하는 팬들에게는 매우 중요하고 재미있는 기록들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강다니엘 인스타그램 계정의 최단 기간 100만 팔로워 달성 기록도 기네스북에 등재되지 않았나!) 

분야를 막론하고 기록과 스토리가 있을 때 그 대상의 존재가치는 더 빛이 나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각 프로스포츠협회들이 운영하는 ‘기록실’ 코너처럼, 문체부 혹은 관련 기관들이 운영하는 ‘K팝 기록실’이 만들어지면 어떨까 하는 싶다. 물론, 각 기획사, 음반사, 음원업체, 공연기획사, 방송사 등이 서로 데이터를 공유해야 제대로 된 아카이브가 구축될 수 있기에 결코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특정 가수나 팀을 넘어 ‘K팝 문화’ 자체에 관심을 가지고 ‘입덕’ 하는 이들이 더 많아지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 술자리에서 K팝을 주제로 한 토론 배틀이 벌어져도 금방 승패가 갈릴 테니 일석이조겠다. 

(글=노컷뉴스 김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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