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은 '우상'이었다. 베일에 쌓인 듯 신비주의를 지향했고, 그럴수록 팬들은 더욱 큰 환상을 갖게 됐다. 일명 '오빠 부대'가 본격적으로 생겨나고, 팬덤 문화가 정착하기 시작 했던 초창기 아이돌 시장의 그림이다.
시대는 완전히 바뀌었고, 아이돌 시장도 발 맞춰 변화했다. 신비주의에서 소통주의로. '오빠'를 따라다니는 시대에서 '애기'를 키우는 시대로.
요즘 '-깅'이라는 흥미로운 애칭이 있다. 팬들이 자신이 지지하는 아이돌 가수를 친근하게 부르는 방식인데, 별칭에 아기를 뜻하는 '-깅'이라는 표현을 붙이는 식(예를 들어 '윙크남'이라는 별명을 가진 워너원 박지훈을 '윙깅'으로 부르는)이다.
데뷔하는 아이돌 멤버들의 나이가 비교적 어려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지만, 이는 중요한 점을 시사하는 결정적인 포인트다.
과거 아이돌을 우상시했던 때와는 달리 팬들은 이제 '내 새끼'를 키운다는 마음으로 팬 활동을 펼친다는 것이 핵심이겠다. 일종의 지분투자와도 같은 맥락인데, 내가 점 찍은 '내 새끼'를 성장시키고, 또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며 뿌듯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에 과거에 비해 팬들은 좀 더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애정을 표현하고 있다. 마치 내 아이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는 엄마의 마음으로.
이 같은 시장의 흐름을 간파한 프로그램이 Mnet의 '프로듀스 101' 시리즈다. '국민 프로듀서'에게 직접 투표를 맡겨 '내 새끼' 지분을 갖게 한 설정과 기획은 영리했다. 서바이벌은 누군가를 응원하면서 보게 되기 마련인데, 이 것이 팬심과 직결되는 부분이다. 시청자들은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응원하는 이의 성장을 지켜보면서 애정을 키우고 방송이 끝난 이후에도 이 끈끈한 관계를 유지한다.
그렇다 보니 파생 그룹인 아이오아이(IOI)와 워너원(Wanna One)은 신드롬 급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팬들이 갖는 애정과 뜨거움의 정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후 론칭한 JTBC '믹스나인'이 성공을 거두지 못한 포인트도 여기 있다. 이미 아이돌 시장의 소비자들이 '프로듀스 101'을 통해 '내 새끼'를 찾았기 때문. 다른 연습생들에게 줄 애정과 관심은 남아있지 않았던 터다.
방탄소년단, 사진제공|빅히트엔터테인먼트
방탄소년단 역시 '우상'의 시대가 저물었다는 것을 빠르게 캐치한 팀이다. 성장과 공감에 포커스를 맞추고, 끈끈하게 소통하며 유대감을 확보해온 행보는 꽤나 영리했다.
이들은 데뷔 전부터 끊임없이 또래들이 바라보는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며 공감을 사왔다. 그들이 외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음악으로 대변하면서 응원과 호응을 얻었고 그 과정에서 팬덤은 단단하게 응집됐으며 커져 나갔다. 10대 소년 같은 모습에서 어느 덧 '청춘'을 노래할 수 있는 청년들로 성장했고, 그 과정을 함께 지켜봐 온 팬들은 강하고 단단한 유대감을 가지고 이들을 지지하게 된 것이다.
다양한 SNS 채널과 플랫폼을 통해 콘텐츠를 확산시키는 방식 역시 탁월했다. 영상과 사진 등 이른 바 '덕질'을 할 수 있는 '떡밥'들을 야무지게 뿌리고 회수해가며 팬들과의 연결고리를 끊임없이 이어온 바다.
과거 아이돌의 '신비주의'와는 완전히 다른 전략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는데, 이 포인트는 다시 한 번 주목해볼 만하다.
이런 성공사례들이 나타나면서 가요 기획사들은 '소통', '친근함', '공감', '유대' 등을 키워드로 마케팅을 하고 있다. SNS계정을 통해 일상을 끊임없이 공개하고, 팬들과 가까이서 만날 수 있는 이벤트를 준비하고, 앨범에는 스토리를 담아 연속성을 유지해 다음을 기약한다.
시장의 흐름을 읽어볼 수 있는 유의미한 변화들. 확실히 아이돌이 '우상'이었던 시대는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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