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계절처럼, 매년 음원차트에는 '힙합 열풍'이 부는 시기가 찾아온다. 열풍을 일으키는 주체는 음악채널 엠넷이다.
엠넷은 2012년부터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미더머니'를 시즌제로 운영 중이다. 2015년부터 2016년까지는 스핀오프격인 여자 래퍼 서바이벌 '언프리티랩스타'를 세 차례 선보였고, 지난해부터는 고교 랩 대항전이라는 타이틀을 내건 '고등래퍼'로 그 빈자리를 채웠다. 올 하반기에는 '쇼미더머니' 시즌7을 론칭할 예정이라고.
엠넷표 힙합 프로그램이 국내 힙합계, 아니 가요계에 미치는 영향력은 실로 대단하다. 지금 당장 음원사이트에 접속해 실시간 차트를 들여다보면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현재 각종 음원차트 상위권에는 얼마 전 종영한 '고등래퍼2' 음원들이 상당수 꽂혀있다.
신곡을 발표하는 많은 가수들의 목표가 "음원 차트 TOP10 진입"일 정도로 치열한 가요계다. 이런 가운데 특정 프로그램에서 탄생한 음원들이 차트 상위권에서 높은 지분율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일이 분명하다.
그런데, 차트를 다시 찬찬히 살펴보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지점이 있다. 지난해 여름과 가을을 뜨겁게 달궜던 '그들'의 이름을 쉽게 찾아볼 수 없다는 점. 다시 말해 '쇼미더머니6'의 주역들을 찾아볼 수 없다.
잠시 기억을 더듬어보자. 시즌6 우승자는 리듬파워 행주였다. 준우승은 넉살. 이밖에 우원재, 주노플로, 한해, 조우찬, 킬라그램, 매니악, 영비, 블랙나인 등이 본선 무대에 올랐었다.
쇼미더머니6, 사진|CJ E&M
하지만, 이들 중 현재 국내 최대 음원차트 멜론 일간 차트 TOP10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이는 프로그램 종영 직후 발표한 '시차(We Are)'로 롱런에 성공한 우원재가 유일하다.
씁쓸한 일이다. 이 같은 현상이 매년 반복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물론 음원차트가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지만, 음원차트가 대중의 관심도와 인기의 척도를 가늠할 수 있는 바로미터이지 않나. 이른바 '쇼미빨'이 빠지고 나면, 차트를 뜨겁게 달구던 래퍼들은 절대반지를 잃어버린 골룸처럼 힘을 잃어버리고 만다.
여기서 더욱 씁쓸한 건 '쇼미빨'을 잃어버린 래퍼들이 다시 '쇼미빨'을 얻기 위해 '쇼미더머니'로 향하는 패턴이 반복된다는 점. '엠넷표 힙합 프로그램들은 분명 대한민국 힙합계의 양정성장에 기여했지만, 이 같은 기형적인 시장 구조를 만들어 낸 장본인인 것도 부정할 수 없다.
'쇼미더머니'를 비판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시선을 돌려 래퍼들에게 날카로운 잣대를 들이 대보면, 그들은 방송의 힘이 아닌 오롯이 음악으로 대중의 마음을 훔치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니까.
음악이 아닌 '쇼미더머니'로 승부수를 보려는 래퍼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점 또한 아쉽다. 언제부턴가 래퍼들이 엠넷이 만들어낸 기형적 시장 구조에 적응, '한탕주의'에 익숙해져 버렸다는 생각도 든다.
사실 국내 가요시장 자체가 아이돌과 대형기획사 중심인 기형적 구조라 래퍼들이 방송의 힘을 빌리지 않고 기를 펴기가 좀처럼 쉽지만은 않다. 그러나 지금보다 더욱 척박한 환경이었던 때도 타이거JK나 다이나믹듀오 같은 랩스타가 탄생하지 않았던가.
과연 최근 몇 년 간 새로운 랩스타는 탄생했는가, 누군가 이 같은 질문을 한다면 필자는 물음표를 던지고 싶다. 그러면서도 그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꾸길 기대한다. 다시 말해 새로운 랩스타의 탄생하길 기대하고, 더 나아가 힙합 가수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켄드릭 라마처럼, 국내에도 대중과 평단의 찬사를 받는 앨범을 만들어내는 랩스타가 나오길 바란다.
올 봄 방송계와 가요계를 뜨겁게 달군 '고등래퍼2'를 흥미롭게 시청했다. '명상래퍼'라는 수식어를 얻은 우승자 김하온을 비롯해 이병재, 이로한(배연서), 윤진영, 조원우 등 '고등래퍼'들의 랩 실력에 감탄했고, 그들이 내뱉는 가사에 진정성을 느꼈다.
두 달여 간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한 '고등래퍼'들의 앞으로의 행보를 응원한다. 1년 뒤 그들이 방송 음원이 아닌 자신의 곡으로 여전히 차트 상위권 안에 머물러 있길, 신곡을 발표할 때마다 뜨거운 관심을 얻을 수 있길 바라고, 먼 훗날에는 '랩스타'로 성장하길 바란다. 방송의 힘으로 탄생한 1년짜리 랩스타는 더는 보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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