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크레용팝의 '빠빠빠' 가사 중 일부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빠빠빠'는 2013년 8월께 음원차트에서 대이변을 연출한 곡이다. 이 곡은 그해 6월 발표 당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놀라운 차트 역주행을 펼친 끝에 차트 1위까지 찍었다.
콘셉트의 승리였다. 당시 걸그룹이 트레이닝복을 입고 헬멧을 쓴 채 '직렬 5기통 춤'을 추는 모습은 온라인상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차트 100위권 밖에서 출발한 '빠빠빠'의 순위는 점차 상승했고, 기어코 1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수많은 패러디 영상이 만들어졌을 정도로 '빠빠빠의 인기는 대단했다.
"위 아래 위 위 아래 위 아래 위 위 아래
위 아래 위 위 아래 UP~"
이번에는 EXID의 '위아래' 가사 중 일부. EXID는 이 곡으로 지난 2014년 역주행의 아이콘이 됐다. '위아래'는 그해 8월 발표 당시 이목을 끌지 못했지만, 한 팬이 촬영한 '하니 직캠'이 온라인상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뒤 차트 역주행을 시작했다.
이후 순위는 급상승 기류를 탔고 그해 연말 각종 음원차트 최상위권에 올랐다. 곡 발표 4개월여가 지난 뒤 벌어진 일. EXID가 음악방송에 '강제소환' 됐을 정도로 '위아래' 열풍은 뜨거웠다.
무명 걸그룹이었던 크레용팝과 EXID가 기적 같은 역주행을 펼쳤던 이야기. 4~5년여가 지난 옛이야기를 꺼낸 건 최근 음원차트에서 역주행 1위에 오른 가수 닐로가 왜 이들처럼 박수가 아닌 비난을 받고 있는지에 대해 논하기 위해서다.
닐로는 지난해 10월 발표한 곡인 '지나오다'로 반년이 훌쩍 지난 2018년 4월 어마무시한 기세로 차트 역주행에 성공, 1위까지 올라섰다. 무명 싱어송라이터가 트와이스, 위너 등 인기 아이돌그룹의 신곡과 화제의 프로그램 엠넷 '고등래퍼2' 음원을 모두 제치고 '기적의 드라마'를 써낸 것인데 대중은 이 드라마를 썩 반기지 않는 분위기다. 왜일까.
서두에서 언급한 크레용팝과 EXID 이후에도 가요계에는 수많은 '역주행 스타' '역주행 송'이 탄생했다. 2015년에는 백아연의 '이럴 거면 그러지 말지'와 혁오의 '와리가리', 2016년에는 한동근의 '이 소설의 끝을 다시 써보려해'와 볼빨간 사춘기의 '우주를 줄게' 등이 있었다. 지난해에는 신현희와 김루트의 '오빠야', 뉴이스트W의 '여보세요', 윤종신의 '좋니', 멜로망스의 '선물' 등이 차트에서 한 발 늦게 돌풍을 일으키며 주목받았다.
크레용팝(위)과 EXID(아래), 사진|크롬엔터테인먼트·유튜브·바나나컬쳐
이들이 활약을 펼칠 때만해도 대중은 차트 역주행 현상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분위기였다. '좋은 음악의 힘'을 증명한 사례로 여겼기 때문이다. 또, 역주행을 일으킬 법했다는 반응이었다. 차근차근 성장세를 보이며 팬층을 늘려온 가수의 곡이 상승 기류를 탄 경우가 많았고, 인기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한 뒤 재조명 받은 가수의 곡이 대부분이었으니까.
그런데 올 초부터 조금 달라진 분위기가 감지됐다. 출처 불명의 'SNS 바람'을 타고 갑작스럽게 차트에 등장하는 곡들의 수가 눈에 띄게 많아지면서 생겨난 변화였다. 대중은 '이 곡이 왜?' '대체 어떻게?' 라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역주행을 일으킨 확실한 동력이 없다고 판단될 경우엔 강한 '거부 반응'을 드러냈다.
이에 차트 순위는 높은데 평점은 바닥이고, 댓글란은 비난으로 가득한 기이한 모습이 종종 연출됐다. 닐로가 바로 이 경우에 해당했다. 대중은 닐로의 '지나오다'가 차트 상위권에 자리를 잡더니 1위까지 오르자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온)' 곡이라며 의문을 표했고, 역주행의 동력을 찾아 나섰다.
찾고 보니 동력은 바이럴 마케팅(viral marketing)이었다. 닐로의 소속사가 다수의 팔로워를 확보한 음악 전문 페이스북 페이지들을 운영 중인 리메즈엔터테인먼트(이하 리메즈)였던 것. 앞서 서두에서 언급한 크레용팝이 '직렬 5기통춤'을, EXID가 '하니 직캠'을 기반으로 이슈몰이를 하며 기적 같은 이야기의 주인공이 됐던 것과 달리, 닐로는 철저하게 계획된 바이럴 마케팅에 의해 기적 같아 보이지만 결코 기적이 아닌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었던 셈. 대중이 그렇게 만들어진 이야기 속 주인공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기꺼이 박수를 보낼 리 만무했다.
물론, 바이럴 마케팅이 무조건 잘못된 것은 아니다. 현 가요계에서 꽤 많은 기획사가 택하는 홍보 형태. 하지만, 대중이 닐로에게 박수를 보내지 않은 것뿐만 아니라 분노까지 표한 이유는 리메즈가 자체 운영 혹은 파트너십 관계에 있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활용해 닐로의 '지나오다'를 홍보하면서 마치 '입소문'을 타고 순위 상승 중인 곡인 것처럼 소개했다는 점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리메즈'는 올 초 '그날처럼'으로 '역주행'에 성공한 장덕철이 속한 회사라는 점은 닐로를 향한 반감과 의문을 더욱 키웠다. 불과 몇 개월 사이에 한 소속사에서 '역주행'에 성공한 가수가 투 팀이나 나온다는 건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음원 사재기'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한 논란이 커지자 '리메즈' 측은 12일 "'음원 사재기'는 물론, 음원차트에서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의혹을 일축했다. 그러면서 "'리메즈'가 SNS 기반 바이럴 마케팅 전문 회사로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 같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비난 여론이 가라앉지 않자 같은 날 '리메즈' 이시우 대표는 직접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직접 글을 남겨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결단코 '사재기'를 하지 않았고, 하는 방법도 모르며,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 (중략) 저희는 자본력이 있지도, 방송에 출연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지도 않습니다. 대중에게 뮤지션을 알릴 수 있는 창구가 뉴미디어라고 생각했고, 누구나 콘텐츠를 올릴 수 있는 페이스북과 유튜브가 저희가 생각한 유일한 답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이 이름 없는 가수의 음악을 한번이라도 클릭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이름 없는 가수의 음악을 끝까지 듣게 할 수 있을까 수년 동안 수없이 고민했습니다. 그 노력의 결과가 장덕철과 닐로의 음원 차트 진입이었습니다..."
허나, 이 역시 등 돌린 대중의 마음을 돌리기엔 부족한 해명이었다. 이 대표는 자신들이 펼친 바이럴 마케팅이 잘 못된 방법이었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은 채 바이럴 마케팅을 펼칠 수밖에 없었던 사연과 노력 끝에 얻어낸 자신들만의 노하우가 있다는 식의 이야기만 늘어놓았다.
결국 리메즈는 15일 공식입장문을 내고 이 부분을 추가로 해명에 나섰다. "어떠한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지 않았고, SNS에서 공식적으로 제공하는 광고 툴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너무 먼 강을 건넌 분위기. 대중은 리메즈에 대한 신뢰를 잃은 것으로 보이며, 현재도 닐로를 향한 비난은 계속되고 있다.
닐로와 그의 노래 '지나오다'의 역주행을 둘러싼 이번 논란이 가요계에 미칠 파장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음원 차트를 공략할 수 있는 노하우를 가진 회사가 존재한다는 점이 상당히 충격적인데, 이로 인해 각종 음악 사이트의 실시간 차트의 공신력이 떨어질 우려가 있어 보인다.
또, 대중은 이제 'SNS 바람'을 타고 온 역주행 곡을 더욱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것으로 보이며, '리메즈'와 유사한 전략으로 바이럴 마케팅을 펼치던 타 가요 기획사들의 움직임에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이 글을 작성중인 15일 밤 현재 닐로의 '지나오다'는 여전히 각종 차트에서 1위를 기록 중이다. 그런데 '지나오다'가 수록된 닐로의 싱글 '어바웃 유(About You)'는 국내 최대 음원사이트로 꼽히는 멜론에서 5접 만점에 0.9점이라는 굴욕적인 평점을 기록 중이다.
이는 '노하우'를 가지고 반짝 '역주행 스타'를 만들어낼 수는 있어도 '진정한 스타'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는 걸 보여주는 결과가 아닐까. 대중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면 음원차트 1위가 다 무슨 소용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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