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주요일간지 중 하나인 도쿄신문은 지난 주말 일본 대중문화계에 불고 있는 새로운 한류 열풍을 소개하며 이 같은 표현을 썼다. 이 신문은 '겨울연가'로 촉발된 1세대 한류와 동방신기, 카라 등이 일으킨 2세대 한류에 이어 방탄소년단, 트와이스 등을 중심으로 한 3세대 한류 열풍이 불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과거 한류 팬들이 대부분 30~40대 여성들이었던 반면, 3세대 한류의 인기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정치와 역사 문제를 신경 쓰지 않는 10~20대 젊은이들이라는 점을 주목했다.
'일본 정식데뷔 확정'
'일본 데뷔 쇼케이스 대성황'
'일본 오리콘 차트 1위'
사실 굳이 위와 같은 일본 언론의 보도를 일일이 들여다보지 않아도 제3의 한류붐이 일어나고 있다는 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언론사에서 가요 파트를 담당 중인 기자의 메일함에는 오리콘차트, 타워레코드 등 현지 주요 음악차트에서 호성적을 거뒀다는 소식부터 현지 매니지먼트사와 정식 계약을 체결하고 본격적인 일본 활동에 나설 예정이라는 소식까지 아이돌 그룹들의 일본 활동 야기가 담긴 보도자료가 연일 쌓여가고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걸그룹들의 움직임이 상당히 기민하다는 점이다. 국내에서 인기가 좀 있다 하는 팀들은 너나할 것 없이 새로운 한류붐을 타고 일본 시장 공략에 한창인 모습이다. 지난해부터 감지되기 시작한 그 흐름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불씨를 지핀 것은 '원톱 걸그룹'이라는 수식어를 당당하게 내세우고 있는 트와이스다. 지난해 일찌감치 현지 활동에 돌입한 트와이스는 빠른 시일 내에 확실한 자리를 잡은 모양새다. 일본 데뷔 후 3연속 플래티넘(25만 장 이상 판매된 음반을 의미)을 획득하며 승승장구한 이들은 지난달 발매한 세 번째 싱글 '웨이크 미 업'으로 더블 플래티넘(50만 장 이상 판매된 음반을 의미) 인증까지 받았다.
트와이스의 일본 공연, 사진제공|JYP엔터테인먼트
블랙핑크도 분위기가 좋다. 마찬가지로 지난해 일본에서 데뷔해 좋은 반응을 이끌어낸 이들은 7월부터 현지 3개 도시에서 7회에 걸쳐 아레나 투어를 개최하고 팬들과 만날 예정이다. 이 같은 분위기 속 '파워 청순'을 앞세워 국내 대표 걸그룹으로 올라선 여자친구도 지난달 일본에서 데뷔 베스트 앨범을 냈다. 이들은 현지 언론의 뜨거운 관심 속 쇼케이스를 마쳤고, 일본에 머물며 다양한 프로모션을 펼쳤다. 뿐만 아니라 모모랜드는 '뿜뿜'으로 주가를 높이자마자 일본으로 향했고, 성장형 아이돌의 좋은 예로 꼽히는 오마이걸도 일본 대형 음반사 소니뮤직과 현지 매니지먼트 계약을 맺고 데뷔 준비에 한창이다.
이처럼 걸그룹들의 움직임이 유독 기민한 데는 이유가 있다. 일본 내 제3의 한류붐이 걸그룹들에게는 너무나 놓치기 아쉬운 기회이기 때문이다. 가요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걸그룹은 돈이 안 된다"는 정설이 있다. 조금 더 정확한 표현은 "걸그룹으로는 큰돈을 벌 수 없다"인데, 일리가 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 음악 시장은 좁다. 그 좁은 시장 내에서 땅따먹기를 해야 하는 상황인데 보이그룹의 팬덤 규모와 응집력이 걸그룹에 비해 훨씬 큰 게 현실이다. 걸그룹의 음반 판매량은 보이그룹의 그것에 비하면 턱 없이 적으며, 콘서트 규모 역시 마찬가지다. 또, 걸그룹의 경우 해외 진출의 길이 활짝 열려있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상황 속 일본 내 제3의 한류붐은 걸그룹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희소식이다. 일본은 매력적인 시장이다. 미국에 이은 세계 2위 규모의 글로벌 음악시장으로, 실물 음반 판매가 활발하고 라이브 공연 관람 문화가 잘 발달돼 있어 충성도 높은 팬층을 확보한다면 수익성 측면에서 재미를 톡톡히 볼 수 있다. 즉, 일본의 10~20대 젊은이들이 K팝의 매력에 홀딱 빠져있는 지금, 걸그룹들에게 일본 데뷔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어느 정도의 위험은 감수해야 한다. 한일 양국의 정치, 외교적 갈등이 언제 촉발될지 알 수 없고, 일본 내 반한(反韓) 감정이 완전히 사그라든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문제로 인해 한창 중국에서 상승세를 타다가 활동의 길이 막혀 진땀을 뺀 가수들들 여럿 보지 않았던가. 제3의 한류붐이 불기 전, 일본 내 한류 열풍도 한동안 차갑게 얼어붙어 있기도 했다. 또, 일본 활동에 공을 들이가 자칫 국내 팬덤이 증발돼 애써 다져놓은 입지를 잃어버릴 가능성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걸그룹들의 일본 진출 러시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일단 국내에서 탄탄한 입지를 다시는 게 먼저겠지만. 한편 더욱 흥미를 돋우는 지점은 이러한 흐름이 이어지고 있는 이때, '프로듀스101'의 시즌3격인 '프로듀스48'을 통해 한일 양국에서 데뷔할 프로젝트 걸그룹이 탄생한다는 점이다.
지난 15일 한국의 음악채널 엠넷과 일본의 위성방송 채널 BS스카파에서 첫방송된 '프로듀스48'은 '국민이 직접 아이돌 데뷔 멤버를 선발한다'는 포맷인 엠넷의 '프로듀스101' 시스템과 전용 극장에서 상시 공연을 하고 팬들과 만나는 일본 인기 아이돌 그룹 AKB48 시스템이 결합된 프로젝트다. 아이오아이의 탄생시킨 시즌1과 워너원을 탄생키신 시즌2와 마찬가지로 시청자들이 '국민 프로듀서'가 되어 멤버를 직접 선발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전 세계 음악시장에서 갈수록 영향력을 키워나가고 있는 K팝의 제작 시스템과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음악시장인 일본, 그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걸그룹인 AKB48를 운영하는 시스템이 만났을 때 과연 어떤 시너지가 날지 기대가 모아지는 상황이다.
특히 그렇게 탄생한 한일 합작 12인조 걸그룹의 성공 여부와 그 성공이 일본 내 젊은이들에게 K팝 걸그룹에 대한 친숙도를 증가시키고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지가 중요한 관심사다. 만약 그렇게 될 경우 향후 국내 걸그룹 시장의 파이는 한층 커지고 판도는 크게 뒤바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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